본문 바로가기

독서

[스물셋, 죽기로 결심하다]_마음에 묻어버린 문장들. #킬링포인트

  • "아니, 제가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." 나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. "저는 죽을 용기는 없다니까요, 가끔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해질 때가 있어요. 그럴 때 어디라도 조금씩 상처를 내면 숨이 조금씩 쉬어져요." 상담사는 그날 나를 정신과로 보냈다. 그날부터 나는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처방받은 약을 먹기 시작했다. 그래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.

  • "엿이나 먹으라지!"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입버릇처럼 외쳐댔다.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분명 수단에 온 것임이 틀림없었다.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고민거리란 오늘은 뭘 하고 놀까 뿐이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조금 더운 것뿐이었다. 나의 하루 일과란 나일강 앞 그늘에 앉아 한가롭게 시샤를 피우거나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놀 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전부였다.

  • 돈이 없던 어느 날에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털어 식량을 사가지고 세일링보트에 올랐다. 우린 그날 나일강을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갔다. 가진 것은 매점에서 전 재산을 털어 구입한 인도네시아 라면 두 봉지, 물 한 병, 콜라 한 캔, 파인애플 통조림,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건 포기할 수 없다고 이브라힘이 우겨서 구입한 티백 몇 개가 전부였다.

  • "인사는 살람 알레이쿰 아니야? 뭐가 다른데?" "살람 알레이쿰은 당신에게 평화를, 마르합은 말 그대로 그냥 인사야." "근데 왜 마르합이라고 해야 하는데?" "당신이 날 호구로 봤다간 좆 되는 수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인사지." "난 택시기사를 좆 되게 할 생각이 없는데......?"

  • "요즘 테러리스트들의 납치가 성행한다는 정보가 있어, 조심해." 우리는 그의 동료가 한 말은 들은 체 만 체하며 하이네켄을 목구명으로 들이부었다. 하지만 흥청망청 술기운이 올라서도 집에 갈 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. 경찰에게 걸리면 채찍형이 40대였기 때문이다.

  • 수단의 친구들은 '너는 가끔 수단인보다 더 수단인 같아'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아마 아무데서나 드러눕던 버릇 때문이었던 것 같다.

  • "나 진짜 사우디 가보고 싶다." "안 돼, 못 가. 여자가 사우디에 가려면 아버지나 남편이 동행해야 해." "난 안되겠네........" "결혼한 걸로 하면 되지, 결혼 증명서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쉬운데?" "정말? 그렇게 사우디에 입국할 수 있어?" "응, 해줄까?" "정말? 여행 끝나면 이혼은 해주는 거지?"

  • "이브라힘 나 지금 엄청 취한 것 같은데. 이 난간에서 떨어지면 죽을까?" 나는 난간 밖으로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며 물었다. "글쎄......." "내 생각엔 안 죽을 거 같아. 요즘 나일강에 맨날 뛰어들면서 헤엄치는 기술이 늘었거든."

  • 이쯤 되자 나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되었다. 나는 매일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. 깊고 검은 밤 별들이 자르르 박힌 나일강 위에서 세일링을 하는 것. 그런 장면은 나는 꿈에서도 꾸어본 적이 없었다.

 

 

위의 문장들은 [스물셋, 죽기로 결심했다.]의 본문에서 나오는 글쓴이의 일화입니다.

파란색 글씨는 제가 웃기도하고 공감하기도 하던 부분들입니다.